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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
마이산 중턱에서 주저앉은 딸, 그 뒷모습에 울컥했던 이유
화창한 초가을이었어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마이산에 다녀왔는데요, 이름만 듣고 상상했던 것과 달리 정말 돌산이더라고요. 흙길보다 바위길이 먼저 반기는, 그런 산이었어요.
산을 오르는 길에 어느 부녀 한 쌍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버지는 걸음걸이부터 산에 익숙한 티가 났어요. 발 딛는 자리도, 숨 고르는 타이밍도 다 몸에 밴 느낌이었죠. 그런데 딸은 딱 봐도 등산이 처음인 것 같았어요. 발걸음은 자꾸 엉키고, 숨은 벌써부터 가빠 보였어요.
체구도 눈에 띄게 대조적이었어요. 아버지는 마른 편이었는데, 딸은 보통보다 통통한 체구였거든요. 다행히 키가 커서 크게 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저는 속으로 짐작했어요. '아, 아버지가 딸 운동시키려고 억지로 데리고 나오셨구나' 하고요.
부모 마음 알기에 따라나선 딸, 그리고 결국 주저앉은 순간
딸은 20대 후반쯤 되어 보였어요. 그 나이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순순히 등산 따라나설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딸은 별다른 투정 없이 아버지 뒤를 묵묵히 따라 걷고 있었어요. 아버지 마음을 아는 거예요. 저 나이가 되도록 부모 마음을 헤아려 군말 없이 따라나선 것만으로도, 이미 참 착한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산 중턱쯤이었을까요, 딸이 결국 멈춰 섰어요. "아빠, 나 진짜 도저히 못 가겠어." 그러더니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 하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더라고요. 더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다는 몸짓이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지금도 눈에 선해요.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 억지로 따라왔는데, 몸이 정말 말을 안 들어서 결국 주저앉아버린 딸의 그 표정. 미안함과 지침이 뒤섞인 그 얼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자식이 아무리 커도,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더라고요
그 부녀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딸은 이미 다 컸어요. 20대 후반이면 자기 인생, 자기 몸, 자기 선택을 스스로 책임질 나이잖아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딸의 건강이 걱정되어 산을 오르자고 하셨을 거고, 딸은 딸대로 그 마음을 거절하지 못해 힘든 걸음을 옮겼을 거예요.
자식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부모 눈에는 여전히 걱정되는 자식인가 봐요. 저도 부모가 되어보고, 또 누군가의 자식으로 살아보니 이제 조금 알겠더라고요. 부모의 사랑이라는 건 자식이 자라는 속도만큼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 조심스럽고 애틋한 모양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50대에 접어들면서 저는 종종 이런 순간들을 마주쳐요. 낯선 사람들의 짧은 한 장면인데도, 그 안에서 제 부모님과 저의 관계, 혹은 저와 제 자식의 관계가 겹쳐 보이는 순간들이요. 마이산의 그 부녀도 그랬어요.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부모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 쉽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돌산이라 유난히 힘들었던 그날의 등산길, 정상까지 오른 기억보다 오히려 중턱에 주저앉았던 그 딸의 뒷모습이 더 오래 남았어요. 아마 앞으로도 마이산을 떠올릴 때마다 그 장면이 먼저 생각날 것 같아요.
자식은 자라서 부모 품을 떠나가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자식을 향해 있더라고요. 그날 마이산에서, 저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조용히 확인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