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시절 노래방 복도에서 들은 한마디,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복도에서 배운 삶의 교훈
복도에서 배운 삶의 교훈

접대 자리, 저는 늘 문밖에 있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저는 통역으로 일했습니다. 3개 언어를 하다 보니 사업상 만나는 외국인 파트너들과의 자리에 늘 따라다녔어요. 상담도 하고, 밥도 먹고, 접대로 노래방까지 함께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제 통역 실력보다 오히려 이런 자리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맞추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해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나라가 다르면 문화도 다르고, 상대방 직위가 다르면 가는 술집도 달라진다는 걸요. 같은 접대라도 급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부장급을 모실 때와 임원급을 모실 때 가는 곳이 달랐고, 어느 나라 손님이냐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통역이었지, 그 자리의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나 문 앞이나 복도에서 대기하는 쪽이었죠. 그 시간 동안 저는 늘 관찰자였습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몰랐지만, 밖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그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짐작이 갔습니다.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한번은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거기서 술도 파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긴 적이 있습니다. 상사와 외국인 파트너들은 룸으로 들어갔고, 저는 여느 때처럼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 때면 복도 소파에 앉아 있거나, 화장실을 핑계 삼아 잠깐 걷곤 했습니다.

다들 그냥 노래방이라고 불렀지만, 그 집은 스스로를 클럽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수준이 괜찮은 곳이라는 말도 따라붙었고요. 지금이야 도우미라는 말을 쓰지만, 그때만 해도 아가씨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도, 조명도, 음악 소리도 평소 다니던 곳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그날도 별생각 없이 그 복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복도에서 들려온 한마디

기다리다가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복도를 지나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방 앞에서, 한 아가씨가 마담이라는 사람에게 한 소리를 듣고 있는 장면과 마주쳤습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목소리 톤이 심상치 않아서 저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보니 마담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였습니다. 그가 그 아가씨에게 하는 말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술상에 들어가지 못한 게 왜 자기 탓이냐고, 애초에 여기 올 얼굴이 아니었다고, 거울부터 보고 왔어야 한다고, 그 얼굴로 뭘 하겠다는 거냐고, 그럴 거면 머리에 든 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상대를 완전히 깎아내리려는 날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종류의 말이었어요. 사람이 사람한테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됐습니다. 그 아가씨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저는 그 모습을 몇 초쯤 지켜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피했습니다. 룸으로 돌아가는 내내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순간, 저는 처음으로 세상이 무섭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날 복도에서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얼굴이 안 되어도 욕을 먹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더 정확히는, 누군가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취급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세계가 이렇게까지 살벌한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통역으로 다니면서 여러 나라 사람들, 여러 직위의 사람들을 만나 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제가 몰랐던 세상이 바로 그 복도 하나 너머에 있었던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조명과 음악, 웃음소리 뒤에 저런 관계와 저런 말들이 오가고 있다는 걸, 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비단 그 공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느 자리에서든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요.

그날부터 퇴근하고 컴퓨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저는 곧바로 퇴근 후에 컴퓨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당연한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흔한 물건이 아니었어요. 사무실에도 몇 대 없던 시절이었고, 학원에 가도 자판 익히는 것부터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별한 계기나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다는, 그냥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나도 저렇게 함부로 대해질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요. 그 두려움이 오히려 저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퇴근하면 곧장 학원으로 가서 한두 시간씩 자판과 문서 작성을 익혔고, 주말에는 새로 나온 프로그램을 혼자 이것저것 눌러보며 익혔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기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배움이 이후 제 커리어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놓았습니다. 통역만 하던 제가 문서 작업과 자료 정리까지 도맡게 되었고, 회사 안에서도 조금씩 다른 역할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그날 복도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는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합니다.

그리고 지금, 50대가 되어 다시 꺼내보는 이유

이 기억을 굳이 지금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은퇴를 준비하는 지금, 그날의 복도가 다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리에서 물러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자격증이든, 새로운 기술이든, 작은 부업이든, 아니면 이렇게 꾸준히 써 내려가는 글 하나든 상관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회사라는 울타리, 직함이라는 이름표가 저를 대신 지켜줬습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은 다릅니다. 울타리도, 이름표도 언젠가는 벗겨지고, 결국 남는 건 제 손으로 쌓아온 것들뿐입니다. 그날 복도에서 마담 앞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던 아가씨의 모습이,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매섭습니다. 그날 복도에서 제가 온몸으로 배운 것처럼요.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을 때,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씩 준비해 두셨으면 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루 30분씩 새로운 걸 배우고, 작은 목표 하나씩 세워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저도 그렇게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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