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분인데 4분으로 느끼는 기분 |
40대, 캐디로 다시 시작하던 그 봄날
이 이야기를 하면 열에 아홉은 웃는다. "에이, 뻥이지." 어떤 사람은 "머리에 꽃 폈냐"고 놀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꼭 글로 남기고 싶었다. 지금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큰 의미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남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걸 느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감각은 점점 무뎌졌고, 어느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40대에 캐디 일을 시작한 지 딱 넉 달째 되던 어느 화창한 봄날, 그 감각이 다시 깨어났다.
세 분인데, 자꾸 '넷'처럼 느껴지던 날
그날 손님은 세 분이었다. 평범하고 예의 바른 분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라운딩을 시작할 때부터 뒤쪽에 누군가 하나 더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하고 넘겼다. 신입 캐디였던 나는 손님 응대와 코스 관리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3번 홀을 지나면서 그 느낌은 점점 또렷해졌다.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보였다. 골프복이 아니라 장례식장에나 어울릴 법한 차림이었는데, 클럽을 쥐고 제법 그럴듯하게 스윙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위압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손님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만 보이는 건가" 싶어 소름이 돋았다.
그는 몇 홀을 조용히 따라오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위협적이지도 않았고, 심지어 매너까지 좋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를 '매너 좋은 저승사자'라고 부른다.
이상한 일들이 이어지고, 결국 캐디 일을 접다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일이 자꾸 꼬이기 시작했다. 잘 몰던 카트가 괜히 멈추고, 장비가 자꾸 고장 나고, 이유 없이 혼나는 날이 이어졌다. "이제 그만두라는 신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캐디 일을 접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존재가 나에게 방향을 틀라고 알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일이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다. 더 좋은 일자리를 만났고,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50대,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며 다시 떠올리는 그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헛것 봤다"며 웃는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날 나는 봤다. 골프 치는 저승사자를.
지금 50대가 되어 은퇴와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종종 그날을 떠올린다. 우리 인생에는 이유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있다. 갑자기 되는 일이 없고, 자꾸 어긋나고,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기. 그런 시기를 그냥 "운이 나쁘다"고 넘기기보다, "혹시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가 아닐까" 하고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50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를 지나는 시기다. 오래 몸담던 직장을 정리하고, 연금을 준비하고, 새로운 일이나 취미를 찾아 나서는 시간. 이럴 때일수록 눈에 보이는 조건뿐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이 보내는 신호에도 귀를 기울여봤으면 한다. 이유 없이 불편한 자리, 자꾸 어긋나는 계획, 몸이 먼저 보내는 경고. 그것들이 어쩌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의 '매너 좋은 저승사자' 덕분에 인생의 방향을 한 번 크게 틀었다. 그리고 그 방향 전환이 지금 내가 이렇게 은퇴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신호가 있었는지, 혹시 지금 그런 신호를 애써 못 본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혹시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