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되찾은 '내 안의 감각' 이야기

50대 살면서 <내안의 나> 대한 이야기

 

나는 원래 촉이 좀 셌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이유 없이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괜히 조심스러운 사람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냥 "촉이 좋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들었을 뿐이다.

직장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면서 그 감각을 참 많이 써먹었다. 회의 들어가기 전에 "오늘 저 사람 말투가 왠지 심상치 않다" 싶으면 진짜로 문제가 터졌고, 아무 이유 없이 계약서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은 날엔 꼭 오탈자나 빠진 조항이 나왔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스무 번, 서른 번 반복되니까 슬슬 궁금해지더라. 이거, 그냥 우연일까?

과학은 이걸 '빠른 사고'라 부른다

나중에 찾아보니 뇌과학에서는 이런 걸 '빠른 사고(fast thinking)'라고 부른다더라. 우리 뇌가 살아오면서 쌓은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는 거다. 어떤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도, 사실은 뇌가 과거의 패턴들과 빠르게 대조해서 내놓은 결론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듯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로 설명이 안 되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으니까.

제주에서 만난 또 다른 설명

몇 년 전 송당 본향당에 처음 갔던 날이 기억난다. 제주 마을 신당들의 뿌리가 되는 곳이라는데, 딱히 뭘 기대하고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는 순간 뭔가 다르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챘다.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말이 잘 안 붙는, 그런 감각이었다. 그 뒤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상하게 그곳이 떠올랐고, 실제로 몇 번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 내면에 '무의식'이 있고, 그 안에 더 깊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층이 있다고 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물려받은 기억과 상징들이 잠재해 있다가, 꿈이나 직감으로 슬며시 드러난다는 얘기다. 종교에서는 이걸 하느님의 숨결이라 부르기도 하고, 내면의 주님, 수호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름이야 어떻든, 결국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가리키는 말들 같다.

믿고 안 믿고보다 중요한 것

영혼이 정말 있는지, 그건 나도 명확히 답 못 한다. 종교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본성' 혹은 '나를 이끄는 직관' 정도로 받아들여도 충분하다. 우리는 다 감정적이고, 상처받고, 또 어떻게든 회복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 어딘가에서 내가 아닌 무언가가 나를 슬쩍 이끌어준 것 같은 순간, 살면서 한 번쯤은 다들 있었을 거다.

중요한 건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인 것 같다. 젊을 때는 이 감각을 무시하고 살았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 회사가 원하는 속도, 사회가 요구하는 답을 따라가느라 내 안에서 조용히 울리던 소리는 자꾸 뒤로 밀려났다.

돌이켜보면, 그 감각은 늘 옳았다

지금 와서 지난 직장생활을 되짚어보면 신기한 게 하나 있다. 이 감각을 무시하고 밀어붙였던 순간들은 대부분 나중에 후회로 남았다는 거다. "그때 왠지 찜찜했는데 그냥 진행했지" 하는 일들은 꼭 탈이 났고, 반대로 "왠지 모르게 이번엔 조심해야겠다" 싶어서 한 번 더 확인했던 일들은 결국 나를 지켜줬다. 동료들은 몰랐겠지만, 회의 자료를 한 번 더 훑어보거나 계약 상대방을 조금 더 신중하게 대했던 그 순간들의 절반쯤은, 사실 논리가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신호에서 시작된 거였다.

재미있는 건, 나이가 들수록 그 감각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는 점이다. 젊을 때는 성과와 속도에 쫓겨 그 신호를 흘려보내기 바빴는데,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기니 그게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이건 나이 들며 얻는 손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나만의 자산인지도 모르겠다.

50대, 다시 그 감각을 꺼내보는 시간

그런데 50대가 되고 보니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그 촉을, 그 감각을 다시 믿어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요즘, 밖에서 정해준 정답보다 내 안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신호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어떤 날은 그게 그냥 '오늘은 이 길로 걸어보자'는 작은 마음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 사람과는 좀 거리를 둬야겠다'는 분명한 느낌이기도 하다.

영적인 세계라는 게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은퇴를 준비하는 이 시기, 통장 잔고나 연금 계산만큼이나 내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다. 남들이 정해준 정답을 따라가느라 잊고 지냈던 그 감각을, 이제라도 다시 깨워보려 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나도 그런 촉이 있었는데"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느낌을 무시하지 말고 한번 따라가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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