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송당 본향당, 모든 신당의 뿌리를 찾아가다

제주 송당 본향당, 모든 신당의 뿌리를 찾아가다
제주 송당 본향당

 

제주 송당 본향당, 마음이 무너질 때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제주에는 유난히 신당(神堂)이 많습니다. 마을마다 하나씩, 어떤 곳은 두세 개씩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 수많은 본향당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만나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구좌읍 송당리, 송당 본향당입니다.

저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소원이 간절할 때 이곳을 찾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그리고 제주 여인들이 왜 이런 신당에 기대어 삶을 버텨왔는지를 저의 경험을 섞어 풀어보려 합니다.

모든 본향당의 시작, 송당

송당 본향당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소천국이라는 남신과 백주또(금백주)라는 여신이 부부의 연을 맺고 송당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이 제주 곳곳으로 흩어져 각 마을의 본향당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송당을 두고 "당신(堂神)들의 뿌리"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해마다 신과세제가 열리고,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전국에서 심방(무당)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옛날 전설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이고 그 자리에 서보니, 이건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삶 자체였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당오름 자락, 기가 세다는 그곳에서

송당 본향당은 당오름 자락에 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기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곳곳에 놓인 돌들, 나무에 묶인 색색의 천들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얼마나 오랫동안 제주 여인들의 기도터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 돌 하나하나가 마치 생활에 지친 여인들이 붙잡고 울었던 신령님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 송당 본향당은 가장 힘들 때, 소원이 간절할 때 찾아가는 마음의 은신처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녀오는 길에는 몸이 이상해지곤 합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떤 날은 정말 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나면 오히려 개운합니다. 마치 안에 쌓여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처럼요. 그래서인지 전국의 무당들이 이곳에서 기를 받아간다는 이야기를 저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정말 일이 풀리지 않고 마음이 무너질 때, 저는 결국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제주 여인들이 살아낸 방식

제주는 섬입니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살아야 했던 땅이죠. 남편은 바다로 나가고, 여인들은 밭일과 물질과 육아를 혼자 감당해야 했던 시절이 길었습니다. 그 고단함을 어디에 풀었을까요. 상담소도, 마음을 나눌 여유도 없던 시절, 제주 여인들은 신당을 찾았습니다.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돌 앞에 앉아 속엣말을 다 쏟아내고 오는 것. 그것이 그 시절 여인들이 스스로를 다독이던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마음을 어딘가에 내려놓고, 울고, 비우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어오는 것. 지금 우리가 상담을 받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산책을 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방법이 달랐을 뿐, 마음을 돌보려는 지혜는 똑같았던 겁니다.

50대인 우리에게도, 나만의 본향당이 필요합니다

은퇴를 준비하는 우리 나이가 되면 마음이 자주 흔들립니다. 아이들은 독립하고, 회사에서의 자리도 예전 같지 않고,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마음을 어디에 내려놓고 있을까요. 저는 그래서 제주 여인들의 지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만의 본향당, 즉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나만의 자리 하나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벽 바다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절이나 성당일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매일 아침 걷는 동네 산책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곳에서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고, 힘들면 힘들다고, 두려우면 두렵다고 스스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요.

저는 송당 본향당에 다녀올 때마다 느낍니다. 마음을 다 쏟아내고 온 뒤에야 비로소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긴다는 것을요. 은퇴를 앞두고 흔들리는 날이 온다면, 억지로 씩씩한 척하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나만의 마음자리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짧은 시간이,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을 다시 채워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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