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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산동성 옌태 소성리 |
15년 만에 다시 밟은 그 골목, 옌타이는 낯설었다
올해 6월 초, 산둥성 옌타이(烟台)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시간 여행에 가까웠어요. 제 30대와 40대 초반,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10년을 통째로 그 도시에서 보냈거든요. 일도, 사람 관계도, 낯선 타지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혀가며 배운 시간들이 그 골목골목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마음은 늘 있었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큰마음 먹고 다녀왔습니다. 솔직히 각오는 하고 갔지만 이 정도로 달라져 있을 줄은 몰랐어요.
옌타이는 같은 산둥성이라도 칭다오(靑島)나 웨이하이(威海)와는 결이 많이 달라요. 칭다오, 웨이하이는 외국인이 많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강한데, 옌타이는 지역색이 훨씬 뚜렷한 곳입니다. 그만큼 외지인이, 특히 외국인이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은 동네였어요. 저 역시 처음 정착할 때 텃세 아닌 텃세를 느끼며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살던 시절만 해도 옌타이는 큰 건물 몇 개를 빼면 어딘가 어촌 같은 소박함이 남아있는 도시였어요.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이번에 직접 걸어보고는 정말 놀랐습니다.
해변가, 소성리, 조양가 — 몰라보게 달라진 세 곳
제일 먼저 놀란 건 옌타이 해변이었어요. 예전엔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러 나와 그저 걷고 앉아있는, 조용한 바닷가였는데 지금은 곳곳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 시간 맞춰 물을 뿜는 분수까지 들어서 있더라고요.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조명이 켜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가 정말 제가 살던 그 해변이 맞나 싶었습니다.
소성리(所城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살 때는 좁은 골목 사이로 낡은 옛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을 뿐인,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동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옛 건물의 골조는 그대로 살리면서 감성 넘치는 카페와 소품 가게들이 들어선 유람지로 완전히 탈바꿈해서, 젊은 커플들과 사진 찍는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더라고요.
조양가(朝阳街)의 변화는 더 놀라웠습니다. 제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골목이었는데, 지금은 왕홍(网红)들이 예쁜 옷을 차려입고 인증샷을 찍고, 여행객이라면 옌타이에 와서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되어 있었어요. 골목 초입부터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며, 이곳이 그때 그 한적하던 골목이 맞는지 몇 번을 되짚어봤습니다.
그런데 상권은 오히려 죽어 있었다
화려해진 관광지와 달리, 옛 상권은 쓸쓸했습니다. 예전 삼참(三站)은 전국 각지에서 도소매 상인들이 트럭을 대놓고 물건을 실어 나르던, 그야말로 옌타이 유통의 심장 같은 곳이었어요. 새벽부터 사람과 짐이 뒤섞여 정신없던 그 거리를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많고, 문을 연 곳도 손님이 간혹 한둘 지나가는 정도로 조용해져 있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동안, 그 뒤편에서는 생활의 터전이 이렇게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다는 게 마음 한켠을 무겁게 했어요.
그래도 반가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15년 만에 처음 찾아간 그 골목에서, 제가 자주 다니던 단골집 간판을 그대로 발견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예전 그 맛 그대로인 음식을 앞에 두니, 사람도 거리도 다 변했는데 그 가게 하나만은 그대로였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습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50대에 접어들면서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젊은 날을 통째로 바친 장소들도, 사람들도, 결국은 계속 변해간다는 것을요. 화려해진 곳이 있으면 조용히 저물어가는 곳도 있고,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번 옌타이 방문은 저에게 그 세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준 여행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그 도시에서 참 많이 흔들리고, 참 많이 버텨냈습니다. 아무 연고 없는 타지에서 10년을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 시절의 저를 담고 있던 거리가 이렇게 낯설게 변해있는 걸 보니, 묘하게도 서운함보다는 담담함이 더 컸습니다. 사람도 도시도 흘러가는 게 당연하고, 그 흐름 속에서 무언가는 반드시 사라지고 또 무언가는 새로 태어난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한 기분이었어요.
내 인생의 한 시절을 담고 있던 도시가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저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어요. 변화 앞에서 서운해하기보다, 그 변화 속에서도 남아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리운 옛 시절로 남을 거라는 것. 어쩌면 그게 이 나이에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